TotalEclipse

8월에 본 영화, 그 외

Category
diary
Date
2021.09.01
By
Baam

봤던 영화 중에 좋았던 것 - 허공에의 질주,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피닉스, 바바라, 해피엔드(2017), 빅토리아(2015), 윈터 슬립, 로나의 침묵, 영원과 하루, 로제타, 호수의 이방인, 천국보다 낯선, 안개 속의 풍경

1. 피닉스는 vod로 나오자마자 보고 너무 좋아서 극장에서 다시 보고 왔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극장에서 봤어야 했는데

페촐트 영화에서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아주 사소한 행동에서 나오는 간질간질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배우들도 꿀 떨어지는 눈빛에 빠져들게 연기한다. 작품마다 드러나있는 역사 인식과 고찰도 좋지만 미적인 면부터 서정적인 음악의 절제된 사용까지 모든 부분을 사랑한다.

바바라는 최근 작 세 편보다 순한 맛인 편이다. 피닉스와 바바라, 트랜짓과 운디네는 주연 배우들이 같다 보니 캐릭터 사이의 관계에서 차이점이 눈에 띄어서 묶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네 편 모두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주인공이 자의든 타의든 떠나야만 하는 상황 속에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9월에 열리는 페촐트 기획전을 너무 기대 중이다. 봤던 작품들도 이 기회에 다시 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요즘 최애 감독

 

2. 해피엔드에서 프란츠 로고스키가 시아의 샹들리에를 열창하면서 미친놈처럼 춤을 추는 장면은 <엑스 마키나> 이후로 가장 당황스럽고 강렬한 댄스씬이었다. 인생의 좆같음을 춤으로 승화시키는 듯한 장면이라고 해야 하나..? 나중엔 바닥에서 굴러다니기까지 하는 무아지경의 춤사위에 엑스트라들도 나처럼 찐으로 웃음 터진 것 같았음ㅋㅋㅠ 막 추는 것 같으면서 몸 쓰는 게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전직 댄서였네

이 댄스씬이 대체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건지 너무 궁금했는데 오리지널 스크립트에는 없던 장면이었다. 하네케가 프랑스인 배역에 프란츠를 캐스팅하면서 캐릭터를 재고하던 중에 씬을 추가했고, 프란츠가 샹들리에 곡을 제안했다. 자기 캐릭터를 해석한 게 재밌는데, 집에서 뮤비를 보고 또 보면서 준비하다가 충분히 술에 취했을 때 실행에 옮겼을 거라며 저 장면에서의 캐릭터를 사랑한다고ㅋㅋ 자유로워지고 싶고 어딘가로 달아나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춘기처럼 지쳐있는 인물에 샹들리에가 완벽하게 어울리는 노래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 데뷔 초에 찍은 로코 <러브 스테이크> 모든 게 혼란 그 자체인 영화지만 순진하고 어리버리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프란츠가 마냥 풋풋하고 귀엽다

+ 조연으로 출연한 <히든 라이프> 보다가 꿀잠 잘 뻔

 

3.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이 있다면 아쉬가르 파라디의 영화는 삶보다 더 삶 같을 정도로 인물 저마다의 사정이 촘촘하게 수놓아져 있다. 인간 본연의 이기심이나 불신을 지독하게 현실적으로 그려서 4편을 연달아 보니 휴머니즘이 그리워질 정도다. <내일을 위한 시간>을 아쉬가르가 찍었다면 인류애가 박살 나는 엔딩이 나왔겠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걸작이라는 말이 전혀 아깝지가 않다. 전에 본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도 정말 좋았는데 이번에 본 누구나 아는 비밀, 어바웃 엘리, 세일즈 맨은 무난했다.

 

4. 영원과 하루, 안개 속의 풍경

<영원과 하루>에서 물 흐르듯 현재와 공존하는 과거의 추억, <안개 속의 풍경>에서 눈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아이들이 길을 떠나는 장면처럼 마법 같은 순간들로 차있는 영화들. 안개 속의 풍경은 올해 본 작품 중에 최고이자 인생영화가 됐다

 

5. 뉴 포프

영 포프가 인생드라마였지만 뉴 포프를 안 봤다면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한니발 다음 시즌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게 됐다.

영 포프의 긴장감 있는 바티칸 내 권력 싸움도, 골때리는 유머 감각도, 섬세하게 조명되는 입체적인 캐릭터들도 뉴 포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과할 정도로 섹슈얼해지기도 했다. 이게 뭐람?! 하는 생각 속에 본 시간이 절반 정도고 나머지 절반은 주드 파트 기다리면서 봤다. 주드의 화면 장악력은 새삼 대단하고 얼굴도 진짜 짜릿함... 거울 봤는데 저런 사람이 서 있으면 무슨 기분일까

여기서 후속작이 더 나오면 뇌절일 것 같으니 소렌티노는 이제 주드 데리고 영화를 찍어 줬으면

+ 뉴 포프에서는 각 에피소드마다 엔딩 크레딧에서 캐릭터가 신나게 춤을 춘다. 그중에 제일 좋아하는 엔딩. (크레딧 씬은 스토리와 무관함)

 

6. 트웰브 미닛

맥어보이가 더빙에 참여해서 솔깃했는데 메타 점수도 괜찮길래 출시되자마자 해봤다.

타임루프물 영화를 볼 때는 팝콘이나 먹으며 관전하면 돼서 그저 재밌었다면, 막상 주인공 시점이 되니 고문이 따로 없어서 그동안의 루프물 주인공들에게 숙연해졌다. 초반까지는 한정된 시공간 속에 온갖 선택지를 시도하는 데서 오는 신선함이 있지만 루프가 반복될수록 그 점이 오히려 한계가 되기도 한다. 단서를 못 찾거나 실수로 선택지를 잘못 누르면 이전 10분을 처음부터 몇 번이고 다시 플레이해야 되는데, 내가 성질 급한 코리안 게이머라 그런지 영화와 달리 편집도 없이 반복되는 장면을 보기가 지루했다. 그리고 루프나 시간여행 소재를 쓸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막장 설정은 식상할 때가 됐다.